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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어휘

625 참전국 16개국, 22개국

by 동편 서무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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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국 16개국, 22개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유엔(UN)이 ‘침략행위 규탄’ 결의를 채택하며 국제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6·25 전쟁)’은 당시 신생 유엔이 집단안보 체제를 시험받은 첫 전장이었고, 결국 전투부대를 보낸 16개국, 의료지원과 병참 자원을 보탠 6개국까지 총 22개국이 공식적으로 파병·지원에 나섰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투 파병 16개국의료·지원 22개국의 구체적 활약상을 시대적 맥락과 함께 살펴보고, 비공식·식민지 병력까지 포함한 ‘숨은 참전 이야기’도 정리했습니다.


전투부대를 보낸 625 참전국 16개국

6·25 전쟁에 실제 전투병력을 투입한 국가는 아래 625 참전국 16개국입니다. 각국의 파병 규모는 시대·전선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었지만,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 회복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1. 미국
    • 유엔군 사령부 창설과 지상·해공·해병대 주력 제공
    • 32만여 명 이상 투입, 전몰자 약 3만7천 명
  2. 영국
    • 제27여단·제29여단 등 5만6천여 명 파병
    • 글로스터 대대 임진강 전투의 고귀한 희생
  3. 캐나다
    • 프린세스 패트리샤 연대 활약, 중공·북한군 저지
  4. 호주
    • 공군 77전투비행대대·해군 구축함 워터스 등장
  5. 뉴질랜드
    • 해군 프리깃·포병 16연대 파견, 가평 전투로 유명
  6. 프랑스
    • 프랑스대대(대대급 자원병)·라 그랑드 전투로 기록
  7. 터키
    • 터키여단, 장진호·쿰양장 전투에서 ‘용맹’ 각인
  8. 그리스
    • 공수부대·항공대 투입, 코막 산악전에서 공을 세움
  9. 네덜란드
    • 제1대대·해군 구축함 반 헤일 함으로 해·육 상륙작전
  10. 벨기에
    • 룩셈부르크와 혼성대대를 구성해 충청남도 일대 방어
  11. 룩셈부르크
    • 벨기에 대대에 소속, 카펜베르크 능선 교전
  12. 필리핀
    • 7개 대대 순차 파견, 피카·임진강 방어선에서 활약
  13. 태국
    • 1대대·해군 구축함 파견, ‘한강 철교’ 재탈환 공적
  14. 콜롬비아
    • 남미 유일 전투참전, 해군·육군 혼성대대 투입
  15. 에티오피아
    • 카그뉴 대대, 평양 진격 전투·백마고지 방어로 전과
  16. 남아프리카공화국
    • 공군 2전투비행대, 글로스터 미티어기로 12,000회 임무

포인트: 16개국이라는 숫자는 실제 ‘전투병력’을 공식적으로 유엔기 아래 파병한 국가만 집계한 것입니다. 이들 국가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전까지 순환·증원 방식으로 장기간 파견되며 한국 땅 곳곳에 상흔을 남겼습니다.


의료·병참까지 합한 625 참전국 22개국

‘625 UN참전 22개국’이라는 표현은 위 16개국에 의료·병참·비전투 지원을 담당한 다음 여섯 나라를 더한 집계입니다. 당시 의약품·야전병원·병원선·수송선을 제공해 후방을 지킨 이들의 공로 역시 전투 못지않게 중요했습니다.

  • 인도: 카슈미르 프린세스 병원선 ‘마뉴샤’·의료지원단 346명 파견
  • 덴마크: 병원선 ‘야트린 렌’ 9만여 명 치료
  • 노르웨이: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총 90,000명 수술·치료
  • 스웨덴: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수도권 부상병 1만9천 명 치료
  • 이탈리아: 제68 야전병원단, 의무장교·간호장교 등 약 2천 명 파견
  • 서독(독일연방공화국): 적십자·천주교 구호대, 의약품·차량 1,200톤 지원

왜 독일이 가능했을까? 전쟁 직후 미·영·불 점령하에 있던 서독은 군대를 보낼 수 없었지만 적십자 형태의 의료·기술 지원은 허용됐기에 ‘군사 지원국’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비공식·식민지 병력과 숨은 참전 이야기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당시 식민지·해외영토 신분으로 참전한 수많은 병사, 혹은 자발적 의용군도 존재했습니다.

  • 멕시코계 미국인 – 미군 전체 파병 인원의 약 10%에 달하며, 멕시코 정부도 35만 달러 상당의 물자를 별도 지원
  • 푸에르토리코인 – 제65보병연대(‘보라색 하트 대대’)로 불리며 430회 이상 교전
  • 아일랜드계 영국군 – 중립국 아일랜드 국적자 다수가 영국군에 자원입대
  • 수리남·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출신 병사 – 네덜란드 대대·해군에 편입돼 참전
  • 벨기에령 콩고(오늘날 DR콩고) 병사 – 벨기에 부대 지원·수송업무 담당

이처럼 ‘세계대전 직후 형성된 식민 체제·이민사회’는 한국전쟁 병참선 뒤편에서 또 하나의 국제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16개국·22개국 구분이 주는 역사적 함의

  1. 유엔 집단안보의 실험대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집단 군사행동’이자 유엔 헌장 42조의 실제 적용 사례
  2. 냉전 서막에서의 국제협력
    • 미국·영국 등 서방 진영뿐 아니라 터키·에티오피아 등 비서구 국가도 동참, 냉전 초기 ‘자유 진영’ 결속을 공고히 함
  3. 한·참전국 외교의 토대
    • 한국과 참전 22개국은 1953년 이후 원조·투자·문화교류를 지속 확대, 한국 외교 다변화의 씨앗이 됨
  4. 전쟁기념 및 안보 교육 자원
    • 전세계 현충원·전쟁기념관에서 6·25 전쟁 상징물이 유지돼 세대 간 ‘평화의 가치’ 교육에 활용

결론 – 기억해야 할 ‘지구촌 연대’의 서사

6·25 전쟁은 한반도의 비극이자 인류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16개국 전투부대와 6개국 의료·지원국, 그리고 수많은 비공식 참전·후방지원 인력까지 합해 ‘지구촌 연대’를 이룬 사례는, 오늘날 국제사회의 집단안보·인도주의 원칙에도 여전히 시사점을 줍니다. 한국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기저에는 참전국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고, 연구하고, 세대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22개국 국기가 휘날리던 한반도 전장에서 피어난 ‘평화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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